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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영정및감실주독 추천 1
주소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고잔리 산 905 고잔묘당
전화번호 031--
이용요금
이용시간
휴일
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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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조선전기의 정치가이며 학자인 신숙주의 영정과 감실 주독으로 고잔리에 있는 고령 신씨 사당에 함께 봉안되어 있다.

묘당의 향좌측벽의 유리액자속에 걸려있는 영정은 크기 166cm×98cm의 공단화폭에 좌안팔공 면의좌상(左顔八公 面椅坐像)을 그린 것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유명한 화공에 의해 제작되었다고는 하나 20년 후에 새로 단장한 이모본(移模本:본떠서 그린 그림)이 구봉령당(九峰靈堂 충북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 13번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보물 제 6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후 1623년 구봉령당의 영정을 진본(眞本)삼아 이모(移模)하고 병조판서 정범조(丁範祖)가 찬(讚)한 영정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보호 중이다.
이곳 종가의 집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명(明)에서 2본이 그려져 1본은 종가에, 나머지 1본은 현재 충북의 차남가계에 보존하도록 했다고 하나, 아마도 1475년에 이모할 때 2본을 그려 각각 보존케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잔묘당(高棧廟堂)에 소장되었던 영정은 이후 망시(亡矢)되어 1890년에 구봉령당본을 이모한 것이다. 고잔묘당에 있는 영정은 구봉령당본과 화폭재료만 다를 뿐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나 복식의 표현에 있어 매우 유사하며 조선전기에 유행했던 공신도형식(攻臣圖形式: 공을 높이 세운 신하들의 초상화로써 신숙주상이 효시임)을 따르고 있다. 당당한 신체에 두툼한 얼굴을 한 신숙주는 고개를 약간 우측을 향해 돌린 좌안팔공면을 한 채 공수자세로 교의에 앉아 양발을 족좌대에 올리고 있다. 의복은 오사모(烏紗帽:고려 말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에 쓰던 모자로 지금은 전통혼례시 신랑이 흔히 쓰는 것)를 쓰고 금대를 갖춘 녹색단영을 입었는데 가슴에는 중국식 직금흉배를 묘사한 듯 금니로써 구름과 학, 모란이 그려져 있다. 녹색단령(團領:조선 말기까지 모든 관원이 평소 집무복으로 착용한 평상복)은 몇 개의 진한 녹색선으로 의습을 처리했으며 목둘레의 단령속에 받쳐입은 옷깃은 진한 청색안료를 써서 채색했고, 단령의 안자락은 홍색을 썼다. 족좌대는 갈색으로 설채한 후 먹선으로 장식을 표현했고 다리를 놓는 상면은 진한 청색을 채색했다. 얼굴표현은 눈가와 코 밑 부분에는 색채를 차차 엷게하여 흐리게 하는 선엽법(渲葉法)을 써서 음영을 주었고 눈썹이나 수염은 세필로 묘사했는데 공이 38세였을 때의 모습을 그렸던 것을 다시 이모한 탓인지 일반적인 초상화와는 달리 수염도 적고 비교적 젊게 보인다.
대체로 이 초상화는 모본을 충실하게 이모하려고 노력했으므로 안면묘사에만 치중하였고 관복의 흉배나 의습처리는 간단하게 처리한 듯 하다.
형식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에 유행했던 공신도형식인 좌안칠분면의좌상(左顔七分面椅坐像)이면서 의자나 족좌대 밑에 반드시 채전(彩氈:채색된 양탄자)이 깔려있는 것에 비해, 좌안팔분면의좌상(左顔八公面椅坐像)이고 채전이 깔려 있지 않아 조선전기에 유행한 형식을 잘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폭의 우측상단에는 '조선영의정 고령부원군 사문충호 보한재신공 휘 숙주자범옹진(朝鮮領議政 高靈府院君 謝文忠號 保閑齋申公 諱 叔舟字泛翁眞)'이라 쓰여 있고, 좌측 중간에는 두 줄로 '성묘을미 공졸후이백십오년(成廟乙未 公卒後二百十五年)','숙묘기이개장후 이백이년경인 이모(肅廟己已改粧後 二百二年庚寅 移慕)'라고 쓰여져 있다.

주독은 신주를 모셔두는 궤이다. 신주(神主)는 죽은 사람의 위(位)를 베푸는 나무패이며, <오경이의(五經異義)>에 의하면 신주는 신상(神像)을 뜻한다고 하였다. 신주는 본래 천자와 제후만이 모실 수 있다고 하였으나 우리나라는 중국의 <예서>에 따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시게 되었다. 본래는 시신을 매장한 다음 신주를 만들어 혼이 여기에 깃든 것으로 생각한다. 신주는 그 4대손이 모두 죽을 때까지 사당에 모시고 지내다가 산소에 묻는다.
이 신주는 주신과 받침대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주신은 전신(前身)과 후신(後身)으로 나뉘는데, 이 전신과 후신을 합쳐서 이루어지고 받침대에 끼우게 되어 있다.
이 주신은 약 22cm, 너비 7cm, 두께 3cm로 그 두께의 1/3이 전신, 2/3가 후신이 되도록 만들었다. 주독은 가로 30cm, 세로45cm로 재료는 밤나무를 써서 제작하였다. 그 속은 길이 7.2㎝, 너비 2㎝, 깊이 1분 크기의 함중(陷中)을 파고 양옆에 구멍을 뚫어 함중과 통하게 하였다. 전신은 후신의 턱 아래로 깍아낸 크기와 같도록 만들어 후신에 끼워 함께 받침대에 심어 끼웠다. 신주는 흑칠을 한 독좌(獨坐)에 모시고 독개(犢蓋)를 덮은 다음 창독(窓犢)에 넣어 사당의 감실에 보관하였다. 창독의 창호는 만살문으로 촘촘하게 짰으며, 울거미는 흑칠을 올리고 살창에는 주칠을 올렸다.

□ 신숙주의 생애 (申叔舟:1417~1475)

신숙주의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희현당(希賢堂)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태종 17년(1417) 6월 13일, 전라도 나주에서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지낸 신장(申檣)과 금성 정씨 사이에 서 5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세종 21년(1439)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 전농시직장(典農寺直長)·집현전(集賢殿) 부수찬을 역임하고, 1443년 통신사변효문(卞孝文)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훈민정음 창제에 공을 세웠으며 세종 29년(1447)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여 응교(應敎)에 특진하고 부제학 등을 거쳐, 문종 2년(1452) 수양대군이 사은사로 명나라에 갈 때 서장관으로 수행하고 이듬해 부승지로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참여, 정난공신 2등이 되었다.
단종 2년(1454) 도승지에 오르고 세조가 즉위하자 그를 적극 보좌하여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에 예문관대제학이 되어 고령군(高靈君)에 봉해졌고, 이해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병조판서·우찬성·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우의정에 올랐고 1459년 좌의정에 승진, 1460년 강원 함길도도체찰사(江原咸吉道都體察使)로서 모련위(毛憐衛)의 야인(野人)을 정벌, 세조 8년(1462) 영의정이 되었다.
예종 즉위 후 원상(院相)이 되었고, 같은 해 남이(南怡)를 숙청한 공으로 익재공신(翊戴功臣) 1등이 되었으며 성종 2년(1471) 성종을 잘 보좌하여 다시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채록, 영의정에 재임되었다.
뛰어난 학식과 문재(文才)로서 6대 왕을 섬겼고,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동국정운(東國正韻)》,《국조보감(國朝寶鑑)》,《세조실록(世祖實錄)》,《영모록(永慕錄)》 등을 찬수(撰修)했다. 세종 때는 왕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은 학자였으나 수양대군의 왕위찬탈(王位簒奪)에 가담한 점에서 후세에 비난을 받았다.
성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저서에는 《보한재집(保閑齋集)》,《북정록(北征錄)》,《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사성통고(四聲通攷)》등이 있다.

자료출처: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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