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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온장군 충신정문 추천 1
주소 평택시 금암리 516
전화번호 031-664-2213
이용요금 무료입장
이용시간
휴일
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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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소개 이용정보 추가정보 추가설명 찾아오시는길  
소개

 
이 정문(旌門)은 조선 명종 때에 일어난 을묘왜변(乙卯倭變)때 전라도 장흥부사(長興付使)로 재직 중 왜구와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친 한온장군의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장군은 이 고장에서 태어나 20세 때 과거에 올랐고, 38세 때 장흥부사에 부임, 백성의 어려움을 보살펴주는데 힘써 신망을 받았다. 그러나 이때 장흥 달량포(達梁捕)에 왜선 70여척이 쳐들어오자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치었다. 숙종 22년(1696) 그의 충절을 기려 충의(忠義)라는 시호를 내리고 충신정문을 세우게 했다.

현재의 정문 규모는 정면 1간(250cm), 측면 1간(215cm)으로 정면은 홍살을 만들고, 측면과 배면은 벽으로 쌓았다. 화강석으로 된 사각뿔대 초석 위에 목조 원형 기둥으로 지붕은, 한식의 골기와를 얹은 맞배지붕이고 옆면은 방풍널을 달고 있다. 정문은 붉은 적벽돌의 담장으로 둘러져 있는데 정면에 조그만 문을 달았으며, 정문 안 정면 중앙에는 현판이 있고 내부 왼쪽 옆면에 정문 내용이 걸려 있다. 한편 내부의 왼쪽 현판에 ‘철장석선 일심순국(鐵腸石膳一心殉國)’(창자는 쇠붙이와 같고 쓸개는 돌과 같아라. 그 마음은 나라에 바쳤도다)라는 기록은 그의 순절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한온의 생애 (韓蘊:1511~1555)
한온은 본관은 청주, 자는 군수(君粹)이며 서탄면 금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건강하고 머리가 총명하여 나이 20세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중종 31년(1536)에는 6진을 설치하고 친히 군대를 정렬한 다음 병사들의 사기와 훈련 상태 등 검열하고 격구(擊毬: 젊은 무관이나 민간의 상류층 청년들이 말을 타거나 걸어 다니면서 공채로 공을 치던 무예)를 하였을 때, 한온이 2등으로 아마(兒馬: 조선 시대, 관리가 작은 공을 세웠을 때 임금이 상으로 내리던 말)를 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명종9년(1554)에는 전라도 장흥부사로 부임하였으며, 어려운 백성을 보살펴 주는데 힘써 많은 신망을 얻었다.
한편 당시는 을묘왜변(乙卯倭變)으로 나라가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을묘왜변은 조선 명종 때 왜구가 전남 영암․강진․진도 일대에 침입한 사건으로 당시 조선은 삼포왜란(三浦倭亂, 1510년)과 사량진왜변(蛇梁鎭倭變, 1544년) 등 왜구들의 행패가 있을 때마다 이에 대한 제재조치로 그들의 세견선을 엄격히 제한했다. 이에 조선으로부터 물자의 보급을 받아야 했던 왜인들은 완화조치를 요구했으나 조선정부는 응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조선정부의 통제에 대해 불만을 품은 왜구는 1555년 70여척의 배를 끌고 전남 연안지방을 습격하여 영암의 달량성․어란포․진도의 금갑․남도 등의 보루(堡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이나 콘크리트 따위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를 불태우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어 장흥 강진에도 침입하니 장흥부사로서 한온은 절도사 원적(元績), 영암군수 이덕견(李德堅)과 더불어 달량진을 구원하기 위하여 갔다. 한온은 입성하여 방비하였지만 왜적이 거짓으로 도망하였다가 곧바로 반격을 하였고, 적의 수는 너무 많고 원병은 오지 않았다. 3일이 지나자 식량이 떨어져 군사들로 하여금 항복하는 모양을 취하도록 하였으나 왜적이 세력이 약함을 알고 공격하여 성이 함락되고 절도사 원적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이 전투에서 그의 칼이 두 동강이 나자 칼을 버리고 맨몸으로 적과 싸우다가 마침내 장렬히 전사하였는데 화가 난 적장은 한온의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성벽에 걸어 까마귀의 밥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한편 싸움을 하기 전 적군은 한온을 모략하여 아군의 사기를 저하시킬 목적의 간교한 술책으로 한온이 여색과 술만 좋아하고 주민을 괴롭혀 재산을 모으고 있다는 가짜 상소문을 조정에 보냈다고 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적의 간교에 속는 줄도 모르고 한온을 벌하기 위하여 어전회의를 열게 되었는바 병조판서에 있던 이율곡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고 공적으로도 신임 하던 터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한온의 사람됨이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본인이 직접 진상조사를 해보겠습니다."라고 하니, 당시 신임을 받던 이율곡인지라 쾌히 승낙하였다. 며칠이 걸려 이율곡이 현지에 도착하여 보니 달량포구는 왜구의 손에 들어가 있었고 한온의 사지가 찢기어 성벽에 걸려 날짐승의 밥이 되어 있었으며 또한 그의 사람됨과 전공을 일일이 조사하여 상감께 보고하니, 임금이 심히 슬퍼하며 한온의 넋을 위로하고 그 공을 높이 치하하여 교지를 내려 병조판서로 추서됨과 동시에 그 충성을 온 백성에게 알리라고 하였다고한다.
뒤에 조정에서는 호조판서 이준경을 도순찰사, 김경석(金慶錫)․남치훈(南致勳)을 방어사로 삼아 왜구를 토벌 영암에서 크게 무찔렀다.

을미왜변때 달량포에서 왜구와 싸우다가 전사한 한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숙종9년(1683) 장흥 사람들이 충렬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받들어 모셨다. 숙종22년(1696) 병조판서로 추증되고 충의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충신 정문이 하사되었는데, 정문의 내용은 “충신 증 자헌대부․병조판서․겸 지의금부사․지훈련원사․오위도총부도총관․행통정대부․장흥도호부사 한온의 문이다”라고 되어 있다.

자료출처: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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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36회 운행(문의 : 666-3382)

자 가 용 : 1번 국도 하북지역 영풍제지에서 서탄방향 진입, 1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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